분명 열심히 했습니다.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고, 보고서도 꼼꼼하게 작성했습니다. 그런데 상사의 반응은 늘 같습니다. “이게 최선이야?” “왜 이렇게밖에 못 해?” 구체적으로 뭐가 문제인지 말해주지도 않습니다. 그저 부족하다는 메시지만 반복될 뿐입니다.
혹시 이런 경험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혹시 본인이 팀원에게 이런 말을 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돌아본 적이 있으십니까?
이 글은 조직심리학에서 말하는 ‘학대적 리더십(Abusive Supervision)’의 관점에서, 이른바 ‘억까하는 리더’의 심리적 특징과 구조적 패턴을 분석합니다. 단순한 직장 내 불만을 넘어서, 이 현상이 왜 발생하고, 조직에 어떤 비용을 초래하며,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억까’의 정체: 학대적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조직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행동을 학대적 리더십(Abusive Supervision)이라고 정의합니다. 2000년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Bennett Tepper 교수가 처음 정립한 이 개념은, “상사가 물리적 접촉을 제외한 적대적 언어·비언어적 행동을 지속적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부하직원의 인식”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지속적’이라는 단어입니다. 누구나 한두 번은 날카로운 피드백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패턴이 되고, 특정 대상을 향해 반복될 때, 그것은 더 이상 ‘엄격한 리더십’이 아닙니다.
Tepper 교수의 측정도구에 포함된 행동 항목들을 보면, 억까하는 리더의 모습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나를 조롱한다”, “다른 사람 앞에서 깎아내린다”, “자신의 체면을 위해 나를 탓한다”, “약속을 어긴다” 등이 대표적입니다.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억까하는 리더, 5가지 핵심 패턴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억까하는 리더는 어떤 행동을 반복할까요? 연구 문헌과 실제 직장 사례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패턴이 나타납니다.
1. 성과를 인정하지 않거나, 자신의 공으로 돌린다
팀원이 좋은 결과를 내도 “원래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반응이 돌아옵니다. 반대로 상위 보고에서는 마치 자신이 주도한 것처럼 발표합니다. 이 패턴은 단순한 성격의 문제가 아닙니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대학의 Nina Wirtz와 Thomas Rigotti 연구팀에 따르면, 자기도취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리더 자리에 오를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부하직원을 감정적으로 착취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잘된 일은 리더의 지시 덕분이고, 잘못된 일은 전부 실무자의 태도 문제로 귀결됩니다. 이것은 리더 본인조차 진심으로 자신이 유능하다고 믿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도 처음에는 혼란을 느끼기 쉽습니다.
2. 구체적 개선점 없이 비판만 반복한다
“좀 더 잘해봐”, “센스가 없어”, “마인드가 글러먹었어.” 이런 피드백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실행 가능한 개선 방향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정당한 피드백이라면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바꾸면 되는지를 함께 제시해야 합니다. 그것이 없는 평가는 피드백이 아니라 비난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입사 초기부터 인수인계도 없이 업무를 맡긴 뒤, 시행착오가 발생할 때마다 “능력이 없다”, “일머리가 없다”고 반복적으로 지적하는 상사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패턴은 부하직원의 자존감을 심각하게 손상시킵니다.
3.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거나, 뒤에서 험담한다
회의 중에 특정 팀원의 실수를 모두 앞에서 크게 지적하거나, 다른 팀원들에게 해당 직원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퍼뜨리는 행동입니다. 이것은 조직 내 위계를 이용한 심리적 고립 전략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권순재는 이러한 유형의 상사를 ‘세뇌형’으로 분류하며, 이들의 가장 무서운 특징은 자기 자신조차 속인다는 점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자신이 유능한 상사라고 진심으로 믿기 때문에, 피해를 받는 직원은 “내가 정말 못하는 건가?”라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됩니다.
4. 결정을 미루다가, 결과에 대한 책임을 떠넘긴다
억까하는 리더 중 상당수는 의사결정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실무자가 자체적으로 판단해서 진행하게 한 뒤, 결과가 좋지 않으면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어?”라며 책임을 전가합니다.
이것은 무능함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큰 그림을 보는 능력이 부족한 리더는 우유부단하거나, 자신의 결정을 뒤집기를 반복합니다. 반면, 책임을 질 줄 아는 리더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먼저 해결에 나서고, 이후에 차분하게 개선점을 논의합니다.
5.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억까의 마지막 종착점은 대부분 이 문장입니다. 모든 비난과 무시를 ‘교육’이라는 포장지로 감싸는 것입니다. 이것은 직장 내 가스라이팅의 전형적인 패턴입니다.
가스라이팅이란 타인의 판단과 인식을 의심하게 만들어 심리적 통제를 행사하는 정서적 조작 행위입니다. 직장에서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피해자는 우울증, 불안 장애, 자존감 저하를 경험하게 되며, 이는 업무 성과 하락과 경력 발전의 걸림돌로 이어집니다.
조직이 치르는 대가: 숫자로 보는 억까의 비용
억까하는 리더의 문제는 개인의 감정 차원에 그치지 않습니다. 조직 전체에 실질적인 경제적 손실을 초래합니다.
Tepper 연구팀이 2006년에 발표한 추정에 따르면, 학대적 리더십으로 인해 미국 기업이 부담하는 연간 비용은 약 238억 달러(약 32조 원)에 달합니다. 이 비용에는 결근, 의료비 증가, 생산성 저하가 포함됩니다. 미국 노동자의 약 10~16%가 일상적으로 학대적 리더십을 경험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Frontiers in Psychology에 2025년 게재된 연구는 학대적 리더십이 직원의 감정적 탈진과 비생산적 업무 행동을 유발하는 이중 경로를 실증적으로 분석했습니다. 감정이 소진된 직원은 업무에서 이탈하거나, 극단적인 경우 조직에 해가 되는 행동(사보타주, 무단결근 등)으로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혹시 나도?” — 리더를 위한 자기 점검
이 글을 읽으며, “내 상사 이야기다”라고 생각하신 분도 계실 것이고, “혹시 나도 이러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불편한 질문이 떠오르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후자의 질문이 떠올랐다면, 그것 자체가 이미 건강한 자기 인식의 시작입니다.
다음 질문에 솔직하게 답해보십시오.
피드백 방식 점검: 팀원에게 피드백을 줄 때,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개선하면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좀 더 잘해봐”라는 추상적 표현이 습관이 되어 있습니까?
성과 귀속 점검: 팀의 성과를 상위에 보고할 때, 실무자의 기여를 함께 언급하고 있습니까? 혹시 “내가 시켜서 한 건데”라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깔려 있지는 않습니까?
감정 전이 점검: 본인이 윗선에서 받은 스트레스나 불합리한 지시를, 아래 팀원에게 그대로 전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조직심리학에서는 이것을 ‘하향 전이(Trickle-down effect)’라고 부릅니다. 윗사람에게 받은 부당함을 자신보다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풀어내는 구조적 패턴입니다.
방어 기제 점검: 팀원이 다른 의견을 제시할 때, “네가 뭘 안다고”라는 반응이 먼저 나오지는 않습니까? 이 반응은 자신의 전문성에 대한 자신감이 아니라, 자리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리더십을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싶다면, 다면평가(360도 피드백) 도구를 활용해 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최근에는 조직 진단부터 리더십 코칭까지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HR 솔루션들이 있어서, 리더 본인의 인식과 팀원들의 실제 경험 사이의 간극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억까를 당하고 있다면: 실질적 대응 전략
만약 현재 억까하는 리더 밑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시다면, 감정적 대응보다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첫째, 기록하십시오. 상사와의 대화 내용, 지시 사항, 피드백을 가능한 한 문서로 남기십시오. 이메일, 메신저, 회의록 등 텍스트 기반 기록은 나중에 부당한 상황에 대한 객관적 근거가 됩니다. “이미 자기가 확인한 사항을 나중에 가서야 따지고 화를 내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기록이 본인을 보호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둘째, 자기 객관화를 유지하십시오. 억까를 반복적으로 당하다 보면, 정말 자신이 무능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외부의 시선입니다. 신뢰할 수 있는 동료, 이전 직장의 상사, 또는 같은 업계 지인에게 솔직하게 상황을 이야기하고 자신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요청해 보십시오.
셋째, 조직 내 공식 채널을 활용하십시오. 2019년부터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제76조의2)은 직장 내에서 우위를 이용한 반복적 행위로 인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이 제한적이라는 점은 알아두어야 합니다.
넷째, 떠나는 것도 전략입니다. 연봉이나 복지가 아무리 좋아도, 정신 건강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환경에서는 장기적으로 더 큰 손실이 발생합니다. 이직은 도망이 아니라, 자기 보호를 위한 합리적 판단입니다.
이직을 고민하고 계신다면, 요즘은 자신의 시장 가치를 미리 파악할 수 있는 채용 플랫폼들이 잘 되어 있습니다. 이력서를 등록해두면 기업에서 먼저 제안이 오는 역제안 방식의 서비스도 있어서, 현재 직장에 다니면서도 부담 없이 기회를 탐색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리더십은 선택이 아니라 역량입니다
억까하는 리더의 반대편에는 어떤 리더가 있을까요? 19년 직장 생활 중 가장 어려운 시기를 함께 한 상사에 대해 쓴 어느 직장인의 글이 인상적입니다. 그 리더는 문제가 생기면 먼저 해결에 나섰고, 팀원의 잘못이 있으면 이후에 차분하게 지적했습니다. 외부의 문책을 팀원 탓으로 돌리지 않고 자신이 감당했습니다. 결재를 받을 때도 뻘쭘하게 서 있게 하는 대신 나란히 앉는 것이 규칙이었습니다.
이것이 특별한 리더의 이야기가 아니라, 리더라면 누구나 지향해야 할 기본적인 모습이어야 합니다.
한국표준협회가 인용한 2023년 Global Leadership Forecast에 따르면, 전 세계 기업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위기 중 하나는 리더의 정서적 고립과 조기 이탈입니다. 리더 역시 불안하고, 외롭고, 두렵습니다. 하지만 그 감정을 팀원에게 전이시키는 것과, 인식하고 관리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역량입니다.
억까하는 리더가 되지 않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거창한 리더십 이론이 아닙니다. 한 가지 질문만 기억하십시오.
“지금 내가 하려는 이 말과 행동이, 이 사람이 더 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인가, 아니면 나의 불안과 분노를 해소하기 위한 것인가?”
이 질문에 솔직하게 답할 수 있는 리더가, 팀을 살리는 리더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