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한 직원이 무능한 관리자가 되는 이유 — 피터의 원리가 말하는 불편한 진실

회사에서 이런 경험, 한 번쯤 있지 않으셨나요?

“저 팀장님, 실무할 때는 정말 잘했는데… 팀장 되고 나서 왜 저러지?”

뛰어난 개발자가 개발팀장이 되자마자 팀을 혼란에 빠뜨리고, 최고의 영업사원이 영업부장이 되자 성과가 곤두박질치는 모습. 직장 생활을 해보신 분이라면 이런 장면이 낯설지 않을 겁니다.

이건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닙니다. 조직 구조 자체에 내장된 함정입니다. 1969년, 교육학자 로렌스 J. 피터(Laurence J. Peter)는 이 현상에 정확한 이름을 붙였습니다. 바로 ‘피터의 원리(Peter Principle)’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피터의 원리가 무엇인지, 책에서 어떤 사례와 개념들을 다루고 있는지, 그리고 왜 5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유효한지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피터의 원리란 무엇인가

피터의 원리는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위계 조직에서 모든 구성원은 자신의 무능력 수준까지 승진하는 경향이 있다.”

로렌스 피터는 캐나다 출신의 교육학자로, 워싱턴주립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교사, 상담사, 학교 심리학자, 교도소 강사, 대학교수까지 — 다양한 위계 조직을 직접 경험하면서 하나의 패턴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그가 발견한 패턴은 이렇습니다. 현재 업무를 잘 수행하는 사람이 승진합니다. 승진한 자리에서도 잘하면 또 승진합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다가, 결국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자리에 도달하면 거기서 멈춥니다. 더 이상 성과를 내지 못하니 추가 승진도 없고, 그렇다고 강등시키는 조직도 드무니, 그 자리에 영구적으로 남게 되는 거죠.

1969년, 피터는 작가 레이먼드 헐(Raymond Hull)과 함께 이 관찰을 『피터의 원리: 왜 일이 항상 잘못되는가(The Peter Principle: Why Things Always Go Wrong)』라는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흥미롭게도, 피터가 연구를 담당하고 헐이 실제 집필을 맡았습니다. 원래 풍자적 의도로 쓴 책이었지만, 출간 직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습니다. 독자들이 “이건 풍자가 아니라 우리 회사 이야기”라고 느꼈기 때문이죠. 😂

그런데 이 원리의 진짜 무서운 점은 여기서 드러납니다.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조직의 모든 자리는 그 업무를 수행할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채워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피터의 따름정리(Peter’s Corollary)입니다. 유능한 사람은 계속 위로 올라가고, 무능한 사람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니, 결국 조직 전체가 무능한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된다는 논리입니다.

그렇다면 일은 누가 하느냐고요? 피터의 답은 명쾌합니다. “아직 자신의 무능력 수준에 도달하지 않은 사람들이 한다.” 즉, 아직 유능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조직을 등에 업고 돌아가게 만드는 겁니다.


피터는 어떻게 이 원리를 발견했나 — 책의 시작

피터는 책의 도입부에서 자신의 개인적 경험부터 이야기합니다. 젊은 교사 시절, 그는 “위에 있는 사람들은 더 유능하고 더 많이 알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 일하면 일할수록,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교장 선생님들은 학생 교육보다 블라인드가 일직선으로 내려져 있는지, 화단이 잘 관리되고 있는지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교육감은 누구도 불쾌하게 하지 않는 것과 서류 작업을 제대로 처리하는 데 온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정작 아이들을 교육하는 일은 이들의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 있었죠.

“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정작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잘 못하는 걸까?” 이 질문이 피터의 원리라는 ‘불경스러운 발견’으로 이어진 계기입니다.


엑셀시어 시티 학교 — 피터가 분석한 실제 사례들

피터는 자신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엑셀시어 시티(Excelsior City)’라는 학교 시스템을 사례로 들었습니다. 이 학교의 교사들을 세 부류로 나누어 분석한 내용은, 피터의 원리를 이해하는 데 가장 직관적인 예시입니다.

도로시아 디토(Dorothea D. Ditto) — 모범생이 무능한 교사가 된 사례

디토는 학생 시절 완벽한 모범생이었습니다. 지시를 정확히 따르고, 규칙을 어기는 법이 없었죠. 자연스럽게 교사가 되었고, 수업도 교과서 그대로, 한 치의 벗어남도 없이 진행했습니다.

문제는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였습니다. 긴급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고, 학생들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융통성 있게 반응하지 못했습니다. 규칙을 따르는 능력이 학생 시절에는 최고의 역량이었지만, 교사에게 필요한 유연한 판단력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디토는 교사 단계에서 이미 자신의 무능력 수준에 도달한 셈이었습니다.

N. 비커(Mr. N. Beeker) — 뛰어난 과학 교사가 무능한 학과장이 된 사례

비커는 학생들이 사랑하는 과학 교사였습니다. 실험 설계가 탁월했고, 복잡한 개념을 쉽게 설명하는 재능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과학과 학과장으로 승진했습니다.

하지만 학과장이 되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수업 대신 예산 관리, 서류 작업, 다른 교사들과의 행정적 조율이 주된 업무가 되었는데, 비커는 서류 작업에 극도로 약했습니다. 훌륭한 과학 수업을 만드는 능력과 행정 문서를 처리하는 능력은 완전히 별개의 역량이었던 거죠. 비커는 학과장 자리에서 멈춰버렸습니다.

B. 런트(B. Lunt) — 유능한 교사가 무능한 교장이 된 사례

런트는 교실에서 빛나는 교사였고, 교감으로 승진해서도 학부모와 동료 교사를 잘 다뤘습니다. 그래서 교장으로 한 번 더 승진했습니다.

그런데 교장의 핵심 업무 중 하나는 교육위원회, 교육감, 지역사회 유력인사들과의 정치적 관계 관리였습니다. 아이들과 학부모를 상대하는 능력과 정치적 감각은 전혀 다른 영역이었습니다. 런트는 교장 자리에서 자신의 무능력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이 세 사례가 보여주는 패턴은 동일합니다. 한 단계에서의 성공이 다음 단계에서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각 단계에서 요구하는 핵심 역량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외 아닌가요?” — 피터가 반박한 겉보기 예외들

책의 3장에서 피터는 “피터의 원리에 예외가 있지 않느냐”는 반론을 하나씩 다루며 논파합니다. 이 부분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대목 중 하나인데, 피터는 “피터의 원리에는 단 하나의 예외도 없다”고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물론 특유의 풍자적 어조로요.

Percussive Sublimation “위로 차 올리기”

“저 사람, 분명 무능한데 또 승진했어?” 이런 경험 있으시죠?

피터는 이것을 타격 승화라고 불렀습니다. 무능한 관리자를 해고하는 대신 더 높은 직급으로 “차 올리는” 현상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해당 관리자를 해고하면 “이 조직은 승진 판단을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대신 한 단계 더 올려보내면, 나머지 직원들은 “나도 승진할 수 있겠구나”라는 희망을 유지할 수 있죠.

하지만 피터에 따르면 이건 진짜 승진이 아닙니다. 비생산적인 자리에서 또 다른 비생산적인 자리로 옮기는 ‘유사 승진’일 뿐이라는 거죠.

Lateral Arabesque “긴 직함의 비밀”

문제가 있는 관리자를 직접 강등시키기는 어렵습니다. 대신 조직이 흔히 하는 일이 있습니다. 더 길고 거창한 직함을 가진 다른 자리로 옮기는 겁니다.

“특별 전략 기획 고문”, “선임 혁신 프로젝트 디렉터” 같은 직함이 갑자기 생겨나는 배경이 바로 이것입니다. 겉으로는 승진이나 중요한 보직 이동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의사결정 권한에서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시 여러분의 조직에도 “저 직함은 뭐 하는 자리지?”라고 생각되는 포지션이 있다면, 측면 아라베스크의 결과물일 수 있습니다.

부전자전(Paternal In-Step) 가족 기업의 특수한 경우

가족 경영 기업에서는 조금 다른 양상이 나타납니다. 가족 구성원이 실력과 무관하게 여러 단계를 건너뛰어 높은 직급에 배치되는 현상인데, 피터는 이것도 피터의 원리의 변형이라고 봤습니다. 일반적인 승진이 한 단계씩 무능력 수준에 도달하는 과정이라면, 이 경우는 여러 단계를 한꺼번에 뛰어넘어 무능력 수준에 도달하는 것일 뿐, 본질은 같다는 겁니다.


“초유능력”이 해고 사유가 된다? — 피터의 역설적 통찰

피터의 원리에서 가장 역설적이고 도발적인 주장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위계 조직에서, 초무능력(Super-Incompetence)뿐 아니라 초유능력(Super-Competence)도 해고 사유가 된다.”

무능력은 추가 승진을 막는 장벽일 뿐이지만, 극단적인 무능력과 극단적인 유능력은 둘 다 조직에서 퇴출당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 이유가 동일한데, “위계 질서를 교란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피터는 특수교육 분야의 교사 사례를 들었습니다. 이 교사는 특수 아동들을 가르치는 데 너무나 뛰어나서, 1년 만에 모든 기대치를 훨씬 초과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칭찬이 아니라 문제가 되었습니다. 기존 시스템의 기준과 절차를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된 거죠.

이건 놀라운 통찰입니다. 조직이 무능력에 대해서는 관대하면서도, 지나친 유능력에 대해서는 오히려 경계한다는 것. 왜냐하면 무능력한 관리자는 조직의 현상 유지에 위협이 되지 않지만, 너무 유능한 사람은 기존 질서 자체를 뒤흔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승진의 두 가지 방법 — ‘끌어당기기’와 ‘밀어올리기’

피터와 헐은 4장과 5장에서 사람들이 승진하는 두 가지 경로를 분석합니다.

풀(Pull) — 끌어당기기

은 업무 외적인 관계를 통해 승진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누구를 아느냐”가 “무엇을 하느냐”보다 중요한 경우입니다. 상사와의 개인적 친분, 경영진 가족과의 인맥, 같은 학교 동문 네트워크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피터는 풀을 사용하는 것 자체를 비난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풀이 피터의 원리를 가속시킨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실력이 아닌 인맥으로 승진하면, 자신의 무능력 수준에 더 빨리, 더 확실하게 도달하게 되니까요.

푸시(Push) — 밀어올리기

푸시는 자기 계발과 노력을 통해 승진하는 것입니다. 추가 학위 취득, 자격증 획득, 교육 프로그램 수료, 탁월한 업무 성과 등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피터가 푸시에 대해서도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푸시로 역량을 키워 승진하더라도, 결국 언젠가는 자신의 무능력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는 겁니다. 다만 풀에 비해 그 과정이 좀 더 느리고, 도달하는 수준이 약간 더 높을 수 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좋은 추종자가 좋은 리더가 되지 못하는 이유

6장에서 피터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한 가지 가정을 정면으로 부정합니다. “좋은 추종자(follower)가 좋은 리더(leader)가 된다”는 생각입니다.

지시를 잘 따르고,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하고, 상사의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자연스럽게 리더로 승진합니다. 하지만 리더에게 필요한 역량은 지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모호한 상황에서 결정을 내리고, 때로는 기존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며, 팀 전체의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리더의 일이죠.

지시를 완벽히 수행하는 능력과 방향을 제시하는 능력은 전혀 다른 근육입니다. 피터는 이 때문에 가장 충실한 부하가 가장 무능한 리더가 되는 역설이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정치와 정부에서의 피터의 원리

7장에서 피터와 헐은 시선을 기업 밖으로 돌립니다. 피터의 원리가 정치와 정부 조직에서도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뛰어난 선거 운동가가 당선 후 무능한 정치인이 되는 현상, 탁월한 군인이 장군으로 승진한 후 정치적 협상에서 실패하는 현상 — 이 모든 것이 피터의 원리로 설명됩니다. 선거에서 이기는 데 필요한 역량과 실제로 통치하는 데 필요한 역량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피터는 군대의 사례도 다뤘습니다. 전장에서 뛰어난 전술가였던 장교가 야전사령관으로 승진한 후, 정치인 및 동맹국 지휘관들과 협상해야 하는 자리에서 무능력해지는 경우를 언급했습니다. 전투를 지휘하는 능력과 외교적 협상을 하는 능력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역량인 거죠.


“나는 괜찮아” — 무능력 수준에 도달한 사람은 왜 모르는가

9장에서 피터가 다루는 내용은 특히 불편합니다. 자신의 무능력 수준에 도달한 사람은 그 사실을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자신이 무능력해졌다는 것을 인식하려면, 현재 역할에서 요구하는 역량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역량이 부족한 사람이 그 부족함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이건 이후 1999년에 다른 연구자들이 밝힌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와도 맞닿아 있는 통찰입니다.

피터는 또한 적성 검사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검사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역량의 일부일 뿐, 다음 단계에서 요구되는 복합적인 능력 — 스트레스 관리, 위기 상황에서의 의사결정, 리더십의 미묘한 뉘앙스 같은 것들 — 은 시험지 위에서 측정할 수 없다는 거죠.


정상 유능력(Summit Competence)과 강박적 무능력(Compulsive Incompetence)

피터는 가끔 조직의 최고위까지 올라갔는데도 여전히 유능한 사람이 있다는 점도 인정합니다. 이것을 정상 유능력(Summit Competence)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피터의 해석은 냉정합니다. 이 사람이 특별히 뛰어나서가 아니라, 조직에 충분한 단계가 없었거나 무능력 수준에 도달할 시간이 부족했을 뿐이라는 겁니다.

더 흥미로운 건 그다음입니다. 이런 ‘정상 유능자’들은 종종 다른 위계 조직에서 자신의 무능력 수준을 찾으려 한다고 피터는 관찰했습니다. 이것이 강박적 무능력(Compulsive Incompetence)입니다.

피터는 소크라테스를 예로 들었습니다. 위대한 교사였지만, 자기 변호에는 형편없었다는 것이죠. 현대적으로 바꾸면, 기술 분야에서 성공한 CEO가 정치에 도전하거나, 스포츠 스타가 사업을 시작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한 영역에서의 유능력이 다른 영역에서의 유능력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원리가 동일하게 적용되는 겁니다.


창조적 무능력(Creative Incompetence) — 피터가 제안한 자기 방어법

책의 마지막 장 중 하나에서, 피터는 독자들에게 역설적인 조언을 합니다.

“승진을 피하고 싶다면, 핵심 업무와 무관한 영역에서 의도적으로 사소한 무능력을 보여라.”

예를 들어, 쓰레기통에서 고무줄이나 클립을 주워 모으는 지나치게 절약적인 모습을 보인다거나, 가끔 사장님 전용 주차구역에 차를 세운다거나 하는 식입니다. 핵심은 실제 업무 성과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승진 후보 명단에서만 빠지는 것입니다.

피터가 이 전략에 이름까지 붙여가며 설명한 건, 단순한 장난이 아닙니다. 그의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자신이 가장 유능한 위치에서 머무는 것이 본인에게도, 조직에게도 최선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현재 위치에 만족하는 것이 “야망이 없다”, “의욕이 없다”는 평가를 받기 쉽습니다. 이 모순이야말로 피터의 원리가 계속 작동하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입니다.


위계학(Hierarchiology) — 피터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창시한 학문

피터는 자신의 원리를 발표하면서, 이것이 위계학(Hierarchiology)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토대가 된다고 선언했습니다. 위계 조직이 작동하는 원리를 연구하는 사회과학이라는 거죠.

이 역시 풍자의 일부입니다. 학계가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 자기 업적으로 삼는 관행을 꼬집은 것이죠. 하지만 진지한 면도 있었습니다. 피터는 위계 조직이 인류 문명의 거의 모든 영역 — 기업, 정부, 군대, 교육, 종교 — 을 지배하고 있으며, 이 구조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사회를 이해하는 핵심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50년이 지난 지금, 농담처럼 던진 이 용어가 실제 학술 연구에서 인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면서도 의미심장합니다.


피터보다 먼저 같은 걸 말한 사람들

피터의 원리가 완전히 새로운 발견은 아니었습니다. 비슷한 관찰은 훨씬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독일의 극작가 고트홀트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은 1763년 희곡 『미나 폰 바른헬름』에서 한 군인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좋은 하사관이다. 하지만 나쁜 대위가 될 수 있고, 장군으로서는 확실히 더 형편없을 것이다.”

프로이센의 군사 전략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도 19세기 초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높은 직위로 올라간 후 에너지를 잃는 사람들의 이야기보다 흔한 것은 없다.”

스페인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José Ortega y Gasset)는 1910년에 거의 피터의 원리 그 자체를 말한 바 있습니다. “모든 공무원은 바로 아래 직급으로 강등되어야 한다. 그들은 무능해질 때까지 승진해왔기 때문이다.”

피터의 공로는 이 관찰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름을 붙이고, 수많은 사례로 증명하여 하나의 원리로 확립했다는 데 있습니다.


딜버트 원리, 폴라 원리 — 피터의 원리에서 파생된 개념들

피터의 원리는 출간 이후 수많은 파생 이론을 낳았습니다.

딜버트 원리(Dilbert Principle): 만화가 스콧 아담스(Scott Adams)가 1996년 제안한 개념으로, 피터의 원리를 한 단계 더 비꼬았습니다. 피터의 원리에서는 유능한 사람이 승진하다가 무능해지지만, 딜버트 원리에서는 처음부터 무능한 사람을 관리자로 승진시킨다는 겁니다. 실무에서 방해가 되니까 관리직으로 빼는 것이죠. 연구자 주앙 히카르두 파리아(João Ricardo Faria)는 딜버트 원리가 피터의 원리보다 조직의 수익성을 더 떨어뜨리는 차선책이라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폴라 원리(Paula Principle): 피터의 원리가 주로 남성 직원에게 적용되는 반면, 여성 직원은 오히려 자신의 능력보다 낮은 위치에 머무는 경향이 있다는 관찰입니다. 승진 기회 자체가 불균등하게 배분되기 때문에, 여성은 피터의 원리와 반대되는 문제 — 유능한데도 승진하지 못하는 — 에 직면한다는 것이죠.


50년 후, 연구가 증명한 피터의 원리

풍자 소설에서 출발한 이 원리가 과연 현실에서도 작동할까요? 현대 연구는 “그렇다“고 답합니다.

214개 기업, 5만 3천 명의 데이터

2018년, 미네소타 대학교의 앨런 벤슨(Alan Benson), MIT 슬론 경영대학원의 다니엘 리(Danielle Li), 예일 대학교의 켈리 슈(Kelly Shue) 교수 연구팀이 미국 214개 기업의 영업직 직원 53,035명의 데이터를 분석했습니다.

결과는 피터의 예측과 놀랍도록 일치했습니다.

영업 성과가 뛰어난 직원일수록 관리자로 승진할 확률이 높았지만, 정작 관리자가 된 후에는 더 낮은 성과를 보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승진 전 영업 실적이 두 배 높았던 관리자의 경우, 관리자로서의 부가가치가 오히려 7.5% 낮게 나타났습니다.

더 주목할 점은 이겁니다. 협업 경험이 풍부한 직원은 관리자로서 좋은 성과를 낼 가능성이 높았지만, 정작 승진 결정에서 이 요소는 거의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50년 전 피터가 지적한 것과 정확히 같은 문제 — “현재 업무에서의 성과”만으로 “다른 역할의 적합성”을 판단하는 오류 — 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었던 겁니다.

Gallup이 밝힌 관리자 위기

갤럽(Gallup)의 연구 결과도 피터의 원리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갤럽에 따르면 관리자 역할에 배치된 사람 중 자연적인 관리 역량을 갖춘 비율은 약 10%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기업들이 관리자 인재를 선발할 때 82%의 확률로 적합하지 않은 사람을 선택한다고 합니다. 관리자로 채용되거나 승진한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을 때, 가장 흔한 대답은 “이전 비관리직에서의 성공” 또는 “재직 기간(근속)”이었습니다. 관리 역량과는 무관한 기준이죠.

갤럽의 2025년 글로벌 직장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직원 몰입도는 2024년 기준 21%까지 하락했고, 이 하락의 핵심 원인은 관리자 몰입도의 급락(30%→27%)이었습니다. 갤럽은 팀 몰입도 차이의 약 70%가 관리자에 의해 결정된다고 분석합니다.

이 비용은 천문학적입니다. 갤럽은 이를 연간 4,380억 달러(약 600조 원)의 생산성 손실로 추산했습니다. 피터가 1969년에 예견한 조직적 무능력의 대가가, 2025년에 구체적인 숫자로 확인되고 있는 셈입니다.


피터의 원리가 오늘날에도 중요한 이유

1969년에 풍자로 시작된 이 원리가 반세기가 넘은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조직의 기본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실적이 좋은 사람을 관리자로 승진시킵니다. 여전히 승진을 거부하면 “의욕이 없다”는 평가를 받기 쉽습니다. 여전히 관리자 교육보다 관리자 임명이 먼저입니다.

피터 자신은 책의 마지막 장에서 이 원리를 인류 전체의 진화적 수준으로까지 확장했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류가 점점 더 복잡한 시스템을 다루게 되는데, 결국 인류 역시 자신의 무능력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아닌지 묻는 것이죠. 다소 과장된 결론이지만, 그 안에 담긴 경고는 진지합니다.

결국 핵심은 이것입니다. “좋은 성과를 내는 사람”과 “좋은 관리자가 될 사람”은 다를 수 있습니다. 이 단순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피터의 원리를 이해하는 핵심이고, 극복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 피터의 원리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 — 조직과 개인 각각의 관점에서 — 구체적인 실천 전략을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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