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직장에도 그런 리더가 있었습니까
한 번쯤 이런 경험이 있으실 것입니다. 회의실을 나서면서 동료와 눈이 마주칩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압니다. “저 사람만 없으면…” 이 한마디에 갑자기 동료와의 거리가 좁아집니다. 점심시간에 모여 앉아 리더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평소에는 별로 친하지 않던 사람과도 금세 전우애가 생깁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팀이 의외로 결속력이 강하다는 점입니다. 서로를 향한 불만보다 리더를 향한 불만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팀원들끼리는 놀라울 정도로 잘 뭉칩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깁니다. 이 화합은 진짜입니까? 그리고 그 괴팍한 리더가 사라지면, 정말로 천국이 될까요?
이 글에서는 조직심리학과 사회학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공동의 적 효과(Common Enemy Effect)’가 직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그 결속력의 실체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공동의 적 효과’란 무엇입니까
사회심리학에서는 오래전부터 흥미로운 현상 하나를 연구해왔습니다. 평소에는 별다른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이, 공동의 위협이나 적을 만나면 급격히 뭉친다는 현상입니다. 이것을 학술적으로 ‘공동의 적 효과(Common Enemy Effect)’라고 부릅니다.
이 개념의 뿌리는 꽤 깊습니다. 사회학의 고전적 연구자인 게오르그 지멜(Georg Simmel)은 1908년에 이미 집단 간 갈등이 내부 결속을 강화할 수 있다고 관찰했습니다. 이후 루이스 코저(Lewis Coser)가 1956년 저서 『사회적 갈등의 기능(The Functions of Social Conflict)』에서 이를 체계화하면서, 갈등-결속 가설(Conflict-Cohesion Hypothesis)이라는 이름으로 학계에 자리 잡았습니다. 핵심 주장은 이렇습니다. 외부의 공동 적이 존재하면, 집단 내부의 구성원들은 더 강하게 결속된다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현상이 인간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2021년 교토대학교와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공동 연구팀은 침팬지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외부 집단의 위협 소리(낯선 침팬지의 울음소리)를 들려주었을 때 집단 내부의 공격성이 줄어들고 개체 간 거리가 가까워지는 현상을 확인했습니다. 외부 위협이 내부 결속을 강화하는 것은 진화적으로 깊이 뿌리내린 메커니즘이라는 것입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괴팍한 리더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팀에게 ‘공동의 적’이 됩니다. 그리고 팀원들은 그 리더에 대한 공유된 불만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결속합니다.
역사적 실험이 증명하는 ‘적이 만드는 화합’
이 현상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실험이 있습니다. 1954년 사회심리학자 무자퍼 셰리프(Muzafer Sherif)가 수행한 ‘도적굴 실험(Robbers Cave Experiment)’입니다.
오클라호마의 한 캠프에 모인 22명의 소년들은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였습니다. 연구진은 이들을 두 그룹(‘독수리팀’과 ‘방울뱀팀’)으로 나눈 뒤, 1주일간 각 그룹 내에서 하이킹, 수영 등의 활동을 하게 했습니다. 놀랍게도 불과 며칠 만에, 각 그룹은 강한 정체성과 내부 결속력을 형성했습니다.
그 다음 단계에서 연구진은 두 그룹을 경쟁시켰습니다. 줄다리기, 게임 대회 등을 통해 ‘상대 그룹’이라는 외부의 적을 만들어준 것입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각 그룹 내부의 결속력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동시에 상대 그룹에 대한 적대감도 급격히 커졌습니다. 서로의 깃발을 태우고, 상대 숙소를 습격하고, 소지품을 훔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이 실험에서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셰리프는 이전 1949년 실험에서 ‘공동의 적에 호소하는 방식’이 효과적이었음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초기 실험에서 소년들은 공동의 적을 향해 함께 뭉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직장으로 다시 돌아와 봅시다. 괴팍한 리더가 존재하는 팀은 도적굴 실험의 축소판입니다. 리더라는 ‘외부의 적’이 있기 때문에, 팀원들은 서로의 차이를 넘어서 하나로 뭉칩니다. 점심시간의 수다, 퇴근 후 단체 카톡, 회식 자리에서의 공감 — 이 모든 것이 ‘공동의 적’을 매개로 만들어진 결속입니다.
그런데, 이 결속은 진짜입니까
여기서 중요한 반전이 있습니다. 공동의 적 효과로 만들어진 결속은 조건부입니다. 코저(Coser)는 매우 중요한 단서를 달았습니다. “사전에 기본적인 연대감이 없는 사회체계는, 외부 갈등 앞에서 결속되기보다 오히려 해체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직장에서 매우 현실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만약 팀원들 사이에 최소한의 신뢰와 공유된 가치가 있다면, 괴팍한 리더라는 외부 위협은 이 결속을 더 강화시킵니다. 그러나 팀원들 사이에 기본적인 유대감조차 없다면, 괴팍한 리더는 결속이 아니라 팀 자체의 붕괴를 가속시킵니다.
Stein(1976)의 연구 리뷰에서도 같은 결론이 나옵니다. 외부 갈등이 내부 결속을 높이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기존에 어느 정도의 연대감이 존재해야 합니다. 완전히 남남인 사람들은 공동의 적이 있어도 뭉치지 않습니다.
둘째, 외부 위협이 모든 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리더의 괴팍함이 특정 사람에게만 집중된다면, 나머지는 방관자가 됩니다.
셋째, 결속을 관리할 수 있는 리더십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아이러니한 부분입니다. 공동의 적이 리더 자신이므로, 결속을 건설적으로 이끌 사람이 팀 안에 자생적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 세 가지 조건 중 하나라도 빠지면, ‘저 리더만 없으면 천국’이라는 환상은 그냥 환상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리더가 사라지면, 정말 천국이 됩니까
이제 가장 핵심적인 질문입니다. 그 괴팍한 리더가 떠나면, 팀은 정말로 좋아질까요?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 대답은 “생각보다 복잡합니다”입니다.
공동의 적이 사라지면, 그 적을 중심으로 형성된 결속도 함께 약해집니다. 사회심리학에서 이것을 ‘탈결속화(de-cohesion)’라고 부르는데, 공동의 목표나 위협이 사라진 집단은 다시 개인적인 이해관계와 성향에 따라 재편됩니다.
실제로 Psychology Today에 실린 리더십 분석에서는, 이전에 어떤 리더가 오더라도 잘 굴러가던 조직이 특정 독성 리더의 부임과 함께 급격히 무너지는 사례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 조직이 원래 가지고 있던 결속력은 ‘공동의 적’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공유된 목표와 상호 신뢰로 만들어진 것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반대 방향으로 생각해봅시다. 만약 팀의 결속력이 오직 괴팍한 리더에 대한 반감으로만 유지되고 있었다면, 그 리더가 떠난 후 팀은 두 가지 시나리오 중 하나를 맞이하게 됩니다.
시나리오 1: 새로운 공동의 적을 찾는다. 놀랍게도, 코저는 집단이 결속을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적을 찾거나 심지어 발명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전 리더가 떠나면, 팀은 무의식적으로 새로운 불만의 대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새로 온 리더, 경영진, 다른 부서 — 누군가가 새로운 ‘적’이 됩니다.
시나리오 2: 내부 갈등이 표면화된다. 외부의 적이 사라지면, 그동안 덮여 있던 팀 내부의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옵니다. 괴팍한 리더 뒤에 숨어 있던 의견 차이, 업무 스타일의 충돌, 미묘한 경쟁 관계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동질감으로 뭉친 것입니까, 적대감으로 뭉친 것입니까
여기서 한 가지 더 구분해야 할 개념이 있습니다. 집단 결속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사회적 결속(Social Cohesion)은 구성원들이 서로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감정적 유대를 의미합니다. 과업 결속(Task Cohesion)은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노력하려는 의지를 의미합니다.
괴팍한 리더가 만들어내는 결속은 대부분 사회적 결속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는 동질감이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종류의 결속이 실제 업무 성과로 이어지는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조직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팀의 규범이 조직 전체의 목표와 충돌할 때, 높은 팀 결속력은 오히려 업무 성과를 낮추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즉, “우리끼리 뭉쳐서 리더에게 저항하자”라는 규범이 형성되면, 결속력이 높을수록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높은 결속력은 동조 압력이라는 부작용도 만들어냅니다. 한 연구에서는 오래 함께 일한 임원 팀의 MBTI를 재측정했더니, 팀 내 가장 흔한 성향과 크게 다른 성향을 가진 5명이 모두 조직을 떠났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결속이 지나치면, 다양한 목소리가 사라지고 집단사고(groupthink)의 위험이 커집니다.
건강한 결속으로 가는 길
그렇다면, 공동의 적 없이도 팀이 진정으로 결속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셰리프의 도적굴 실험은 여기서도 답을 제공합니다. 적대적인 두 그룹의 갈등을 해소한 것은 단순한 접촉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영화를 보거나 식사를 해도 적대감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갈등을 진짜로 해소한 것은 상위 목표(Superordinate Goals) — 즉, 어느 한 그룹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고 반드시 협력해야만 이룰 수 있는 공동의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직장에서의 적용은 명확합니다.
공동의 적이 아니라, 공동의 목표로 뭉쳐야 합니다. 프로젝트의 성공, 고객의 만족, 새로운 도전 — 이런 목표들이 팀을 ‘적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함께 이루고 싶은 것’으로 연결시킵니다.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 필요합니다. 하버드대학교의 에이미 에드먼드슨(Amy Edmondson) 교수가 1999년 발표한 연구에서 강조한 개념으로, 실수를 해도 비난받지 않고, 솔직한 의견을 말해도 안전하다는 느낌이 있어야 진짜 결속이 만들어집니다. 괴팍한 리더 아래에서는 이 심리적 안전감이 거의 없습니다.
신뢰는 일관성에서 나옵니다. 독성 리더십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리더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이 신뢰를 파괴한다는 점입니다. 공정하고 일관된 태도가 팀의 신뢰를 만들고, 이 신뢰가 진짜 결속의 기반이 됩니다.
결론: 진짜 천국은 적이 사라진 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저 리더만 없으면 여기는 천국인데.”
이 말 속에는 두 가지 착각이 숨어 있습니다.
첫째, 지금의 화합이 팀원들 사이의 진정한 유대에서 비롯되었다는 착각입니다. 실제로는 공동의 적이 만들어낸 조건부 결속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둘째, 그 리더가 사라지면 자동으로 좋아질 것이라는 착각입니다. 공동의 적이 사라지면, 그 적을 중심으로 형성된 결속도 함께 사라지고, 그동안 수면 아래 있던 내부 갈등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진짜 천국은 적이 사라져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의 목표, 심리적 안전감, 상호 신뢰 — 이 세 가지가 갖춰질 때 비로소 만들어집니다. 괴팍한 리더가 없어도 팀이 잘 굴러가는 조직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건강한 팀입니다.
지금 당신의 팀이 ‘공동의 적’으로 뭉쳐 있다면, 그 결속이 진짜인지 한번 점검해보십시오. 그리고 적이 없어도 함께 일하고 싶은 팀을 만들기 위해, 오늘부터 작은 변화를 시작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